코로나 우울증, '식물'을 처방합니다

건강복지회 0 8 09.1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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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동료들과의 소주 한 잔은 나 같은 직장인들에게 소중한 낙이다. 술잔을 부딪치며 웃고 떠들다가 자리가 끝날 즘에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다시 삼삼오오 모여 당구장 혹은 스크린 골프장으로 가는 과정 자체가 만남의 즐거움을 배가 시켜 준다. 그런데 그 즐거움을 상당 기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주말도 퇴근 후 일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코로나 때문에 종교활동, 취미생활, 경조사 참석, 잠깐 여행 등 소소한 즐거움을 가질 수가 없으니 말이다.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직장인에게 있어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여름 휴가도 올해는 망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난 의욕이 떨어지고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혹시 이거...코로나 블루? 그런 것 같다. 퇴근 후 혹은 주말에 자유롭게 만남을 즐기며 살다가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사교적 만남, 활동적 취미생활을 강제로 단절해야 했으니 누구라도 금단증세 같은 우울증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직장인들은 주 중에 하루 종일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터에서 일한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 스스로를 보상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여 퇴근 후 혹은 주말에 동료들을 만나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도 못 가고 저기도 못 가고 집에만 있어야 하니 생기가 사라질 수밖에. (물론 그 '정도'에 있어서는 생계를 위협받아 코로나 불면증에 시달리는 자영업자 같은 많은 분들과 비교 자체를 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2주 넘게 내가 살고 있는 모양은 대체로 '집안에서 혼자' 살아서 마치 깜깜한 저녁 대초원에 덩그러니 있는 것 같았다. 매우 적적하고 지루한 저녁의 연속이다. 이렇게 며칠을 맥없이 집에서 심심한 걸음으로 어슬렁거리다가 우연히 거실 한 공간을 장식하고 있는 화초들을 보았다. 우리 집에는 화초들이 몇 개 없지만 한곳에 모여 있기 때문에 거기에 서서 그것들을 몰두해서 보다 보니 나는 마치 조그만 초원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우리 아이와 같이 성장한 이름 모를 나무(우리 집 보물이다), 새 아파트 이사 기념으로 샀다가 이제는 훌쩍 커버린 역시 이름 모를 식물, 영전한 임원 사무실 정리하다 얻은 난,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때 키웠던 홍콩 야자수(지금은 내가 키운다), 다육이 하나, 어머니 댁에서 가져온 콩고, 그리고 최근 선물 받은 몬스테라 등.
이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신기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이름 모를 나무를 담고 있는 화분 안에 전에는 없었던 아기 선인장이 보였다. 그 선인장은 예전에 우리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선인장과 똑같은 종이었는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여기에 다시 새 생명을 뿌리내렸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잘려진 행운목이 크고 있는 저기 세숫대야 같이 생긴 항아리 속 나무 가지도 그렇다. 그 나무 가지는 이름 모를 나무가 너무 지저분해져서 일부 가지를 정리하기 위해 이파리가 풍성한 가지 하나를 꺾은 것이다. 그런데 당시 그것을 차마 바로 버리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더 살아보라고 그 항아리에 잠시 넣어 둔 것인데, 놀랍게도 그곳에서 뿌리를 내어 생명을 유지하는 것 아닌가.

홍콩 야자수도 그렇다. 통상 홍콩 야자수는 기둥 줄기를 중심으로 좌우로 뻗어 난 가지에 이파리가 매우 풍성한데 이것은 그렇지 않다. 한때 병에 걸렸는지 밑에서부터 가지가 떨어져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이후 약을 쳐서 병을 고치기는 했으나 살리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기둥 줄기 맨 위에 몇 개만 남아있던 이파리들이 무서운 생명력으로 새끼에 새끼를 치게 하더니 나무 끝에만 이파리가 풍성한 야자나무 같은 모양으로 결국 살아남았다. 게다가 희한하게도 맨 윗단의 한 줄기는 옆으로 한참 삐쳐 나와 마치 동떨어진 섬 같이 되고 말이다. 매우 특이한 모양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
나는 시선을 돌려 그 옆에 있는 난도 보았다. 난은 키우기가 어려워서 우리 집에서 금방 죽어 나갈 줄 알았는데 그래도 7년 이상을 우리와 같이 했다. 사실 얘도 관리를 잘못해서 싱싱했던 잎이 다 썩어 몇 달 전에는 잎이 몇 개 남지 않았었는데 그때부터 집중적으로 돌보았더니 이제는 죽은 쭉정이 옆에서 새순이 올라와 제법 풍성해졌다. 다른 화초들도 비슷하다. 기존의 잎 주변에 마치 어린아이의 피부같이 보드랍고 순결해 보이는 연두색 이파리들이 피어나고 있다. 나는 그것들을 기쁨으로 보고 만지고 쓰다듬어보았고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과 신비함을 느끼면서 퇴근 후 어떤 교제보다도 더 나은 즐거움을 맛보았다.

최근 나의 집에서 혼자 놀기 경험에 의할 것 같으면 가장 감미롭고 다정한 교제, 가장 순수하고 힘을 북돋아주는 교제는 거실에 있는 자연물과의 만남에서 찾을 수 있었다. 사실 돌이켜 보면 퇴근 후 교제에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되던 여러 가지 들은 이점이 대단치 않은 것 이어서 지금은 그것을 하지 못해서 '심심하다, 우울하다, 외롭다'라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연푸른 잎새, 솟아난 작은 생명 하나하나가 친화감으로 부풀어 올라 나를 친구처럼 대해주고 있다. 나는 집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이 상황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황량하고 쓸쓸한 감정 대신 이 친구들을 보며 나와 친근한 어떤 것이 존재함을 분명히 느꼈다. 나는 회사 동료, 단골 술집, 당구장에서 느꼈던 어울림의 즐거움이 반드시 그 사람들, 그 곳이 아니더라도 집에서 혼자 그 정도의 좋음, 아니 그 이상을 맛 볼 수 있음을 분명히 깨달았다.

물론 사람과의 만남은 즐겁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들과 같이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곳에 있어도 고독과 외로움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너무 오래 붙어 있어서 서로에게 새로운 가치를 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자신이라는 저 '신내 나는 김치'를 서로에게 맛 보이는 게 다다. 고독과 외로움은, 소로우의 말처럼, 한 사람과 그의 동료들 사이에 놓인 거리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계속되고 있다. 집에서 혼자 놀기에 지쳐서 (혹은 집 환경이 여의치 않아서) 단속이 없는 곳으로 여기저기 흩어진 후 다시 응집하여 기분 전환을 꾀하는 분들이 많다는데 이러할 때 잠시 서로에게 신맛만 주는 만남을 멈추고 각자의 공간에서 저마다 내면의 정서에 좋은 것들을 찾아 그것에 몰두해 보면 어떨까 한다. 코로나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효과가 있을 것으로 믿고 자신 있게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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